리미널리티 필름

“어딜 가든 외로움이 따라온다. 술집, 택시 안, 거리, 가게에서도 외로움에서 탈출할 수는 없다. 유월 팔일, 인생의 전환기가 찾아왔다. 똑같은 날들이 쳇바퀴 돌 듯 끊임없는 사슬처럼 계속 이어지다가, 갑자기 변화가 찾아왔다.” 영화는 베트남 전쟁 종전 직후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뒤틀린 인물을 주인공으로, 소통에 실패하고 소외되어 사회의 구성원으로 융화될 수 없는 상황을 그의 위치에서 보여준다. 「택시 드라이버」 트래비스 빅클 (로버트 드 니로)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1976

“처음 보는 사람이 왔네. 오늘 저녁은 닭고기야. 참 기괴하지, 인공 닭이거든. 어찌나 작은지 내 주먹보다도 작아. 그래도 최신식이야! 난 빌이라네.” 영화는 전반적으로 헨리의 심리를 하나의 거대한 공간으로 구성하고, 이를 조잡하고 그로테스크한 형체들로 채워넣어 그의 불안과 공포를 드러낸다. 헨리는 꿈틀대며 피를 쏟아내는 조그마한 닭을 보고, 원치않게 아버지가 된 현실과 그에 따른 책임에 대한 공포에 휩싸인다. 인공 닭은 본질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이 만들어낸 창조물에 대한 두려움을 함축한다. 「이레이저 헤드」 헨리 스펜서 (잭 낸스) 데이비드 린치 감독 1977

“계획된 것 모두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들을 믿게끔 하소서.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열정을 비웃게 하소서. 열정이란 사실 감정의 에너지가 아니기에. 영혼과 외부 세계의 갈등에 불과한 것이기에.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을 믿는 것이기에. 그들로 하여금 어린 아이처럼 무력하도록. 연약함은 위대하도다. 강건함은 별것이 아니도다. 인간이 막 태어났을 때 그는 연약하고 유연하도다. 죽음에 이르러서는 뻣뻣하고 둔감하도다. 나무가 자랄 때에는 부드럽고도 잘 휘어진다. 허나 뻣뻣하고 건조해지면 나무는 죽는다. 견고하고 강건한 것들은 죽음의 무리이며, 유약하고 연약함은 곧 새 생명의 신선함이니, 강건한 것들은 결코 승리할 수 없도다.” 잠입자는 작가와 교수를 꿈을 이루어줄 수 있는 방으로 안내한다. 방은 「구역」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으며, 구역은 길과 함정이 스스로 바뀌며 시공간을 초월한 장소이다. 잠입자는 구역에 출입할 수 있는 선택받은 인물로, 그는 아내와 딸의 곁을 떠나 구역에 사람들을 안내하지만, 방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그는 두 장소를 오갈 수 있는 인물이지만, 동시에 두 장소 중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않는 경계에 위치한 인물이다. 대사는 연약함의 힘을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잠입자의 독백이다. 「잠입자」 잠입자 (알렉산드르 카이다노브스키)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감독 1979

“꿈을 꿨어. 사실은 널 만난 날 밤에. 꿈에, 우리 세상이 나왔어. 개똥지빠귀가 없었기 때문에 세상은 어두웠어. 개똥지빠귀는 사랑을 상징해. 아주 오랜세월 동안 세상엔 어둠 뿐이었어. 그런데 갑자기 수천 마리의 개똥지빠귀들이 풀려난 거야. 그들은 눈부시게 밝은 사랑의 빛을 가져왔어. 사랑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처럼 보였어. 또 변하게 했고. 그러니까 그 의미는 개똥지빠귀가 올 때까지 세상은 혼란스럽다는 거야.” 제프리와 샌디의 순수한 시선에서 바라본 추악한 현실은 이질이고 낯설은 요소가 산개된 장면들로 나타난다. 샌디는 개똥지빠귀를 사랑의 상징으로 여기고, 이를 기다리며 평화가 찾아오기를 희망한다. 「블루 벨벳」 샌디 윌리엄스 (로라 던) 데이비드 린치 감독 1986

“물론 그럴 수 있지만 많은 작가가 자신을 보통 사람과 그들이 사는 곳, 일하는 곳, 싸우고 사랑하고 대화하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려고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작품은 공허한 형식주의로 고통받고 퇴보하고… 또 열을 내고 있네요, 쉽게 말하자면, 연극은 3달러짜리 지폐처럼 가짜가 된다는 말입니다.” 바톤은 평범한 인물상을 동경하고 또 그들에 대한 작품을 쓰는 작가이다. 그는 작가적 자의식에 파묻혀, 보통 사람들의 리얼리티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장황하게 늘여놓는다. 그러나 호텔에서 시나리오를 쓰며 골머리를 앓던 바톤은 오드리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비현실적인 상황이 전개되기 시작하자 하루만에 대작을 완성하게 되고, 그가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보통의 사람이었던 옆 객실의 찰리는 살인마 문트가 되어 경찰들을 모조리 죽이고 호텔을 불태운다. 감독은 이와 같이 그가 그려냈던 보통 사람의 삶 또한 밀실의 호텔에서 창작한 이상적이고 공허한 형식주의이었을 뿐임을 후반부에 영화 자체에서의 급작스러운 시나리오를 통해 풍자해내며, 세계와 예술가 사이 관계의 아이러니를 꼬집는다. 「바톤 핑크」 바톤 핑크 (존 터투로) 조엘 코언, 에단 코언 감독 1991

“우리가 진실이라고 말하면 모두 그걸 받아들인다는 건가요? 정신 의학, 그게 가장 최신 종교죠. 누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누가 미쳤는지를 가름하죠. 내게 문제가 생겼어요. 난 믿음을 잃고 있거든요.” 영화는 주인공의 꿈과 미래와 과거를 모두 연결지으며 닫힌 서사를 이룬다. 장면이 실제 미래의 모습인지, 혹은 정신 이상자의 꿈인지 알 수 없는 인물들을 혼동시키고, 관객들 또한 혼동시킨다. 「12 몽키즈」 제임스 콜 (브루스 윌리스) 테리 길리엄 감독 1995

“인생을 선택하라. 직업을 선택하라. 경력을 선택하라. 가족을 선택하라. 망할 놈의 커다란 텔레비전을 선택하라. 세탁기, 자동차, CD플레이어와 전자식 통조림 따개를 선택하라. 건강, 저콜레스테롤과 치아보험을 선택하라. 고정금리 담보대출을 선택하라. 처음 살 집을 선택하라. 친구를 선택하라. 여가복과 깔맞춤 짐가방을 선택하라. 망할 놈의 섬유로 된 쓰리피스 정장을 할부 구매로 선택하라. DIY와 일요일 아침에 망할 나란 놈은 대체 무엇인지 고민하는 걸 선택하라. 망할 정크푸드를 입속으로 처넣으며 소파에 앉아 지루한, 영혼을 짖뭉개는 게임 쇼 시청하기를 선택하라. 결국 썩어 문드러지기를 선택하라. 당신을 대체하기 위해 싸질러놓은 이기적이고 엉망진창인 자식들에게 부끄러운 존재가 되어, 초라한 집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내라. 미래를 선택하라. 인생을 선택하라… 그런데 내가 왜 그런 걸 원해야 하지? 난 인생을 선택하지 않는 걸 선택했다.” 영화는 사회가 보편적으로 제시하는 기성세대의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마약에 중독되어 방황하는 렌튼과 그 친구들의 공허함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소외된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이 인물들은 쾌락적 허무주의에 빠지는 것과 삶의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무기력한 그들은 결국 파멸하거나, 혹은 끝내 좌절하며 평범한 존재가 되기를 선택한다. 「트레인스포팅」 마크 렌튼 (이완 맥그리거) 대니 보일 감독 1996

“개개인은 똑똑해도 집단이 되면 우매하고 위험해. 천오백 년 전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 믿었어. 오백 년 전에는 지구가 평면인 줄 알았고. 십오 분 전까지 자네도 지구에는 인간만 사는 줄 알았지. 이젠 내일조차 예측 못 해.” 모든것은 예측불가능하며, 불변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집단이 되면 간과하게 되는 사실에 대해 드러낸다. 「맨 인 블랙」 케이 (토미 리 존스) 배리 소넌펠드 감독 1997

“에드: 비디오 카메라 가지고 있나요? 르네 매디슨: 아뇨, 프레드는 그런 거 싫어해요. 프레드 매디슨: 난 내 방식대로 기억합니다. 에드: 그게 무슨 뜻이죠? 프레드 매디슨: 일어난 일을 그대로 기억하는 건 아니란 말이죠.” 영화는 자신의 기억을 부정하고 합리화하려는 프레드의 심리를 시간과 공간, 인물과 사건의 왜곡으로 파편화하여 보여준다. 영화에서 프레드의 자아는 그의 상상속 인물들로 분화되고 프레드의 행동은 그들의 행동으로 전가되며 진실의 경계는 흐려진다. 그러나 기억은 그의 깊숙한 한켠에 지워지지 않는 비디오 테이프로 찍혀있고, 프레드는 혼란에 빠진다. 「로스트 하이웨이」 에드 (루이스 에폴리토), 르네 매디슨 (패트리시아 아퀘트), 프레드 메디슨 (빌 풀먼) 데이비드 린치 감독 1997

“설명을 좀 드리죠, 전 레보스키 씨가 아닙니다. 당신이 레보스키 씨죠. 난 듀드에요. 그렇게 부르세요, 아셨죠? 그거나 아니면 듀드 전하, 듀더라든지, 줄이는 걸 싫어하시면 엘 듀더리노라고 하시던지요.” 그는 제프리 레보스키라는 자신의 본명으로 불리기를 거부하고, 스스로를 듀드라고 칭한다. 영화는 그의 동명이인 레보스키로 인한 작은 사건에 휘말리는 것에서 시작해서, 문제는 오해의 꼬리를 물고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개입할 여지도 없이 모든것은 의도치 않게 우연히 해결되고, 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위대한 레보스키」 듀드 (제프 브리지스) 조엘 코언, 에단 코언 감독 1998

“이 세상에는 진실이 없지만 내가만든 그 곳은 다르지. 이 세상은 거짓말과 속임수 뿐이지만 내가 만든 세상에선 두려워할 게 없어.” 영화는 자유를 찾아 도망치는 트루먼과 쇼를 통제하려는 크리스토프의 대립이 주를 이룬다. 자유를 향한 문 앞의 경계지점에서, 크리스토프는 자신이 만든 거짓과 속임수의 세상에서 떠나려는 트루먼을 잡기위해 모순되는 말을 한다. 「트루먼 쇼」 트루먼 버뱅크 (짐 캐리) 피터 위어 감독 1998

“그러니까, 온갖 철학적인 질문이 제기된다고, 자아의 성질과 영혼의 실존 말이야, 내가 과연 나일까? 말코비치가 말코비치일까? 내 손에 나무 조각이 있었는데 이젠 없어. 어디갔지? 사라졌을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말코비치의 머릿속에 남았을까? 모르겠어! 이 관문이 얼마나 골치아픈 형이상학적 문제인지 모르겠어?” 영화는 크레이그가 7층과 8층 사이 7과 1/2층이라는 특이한 공간에 위치한 회사에서 존 말코비치의 머릿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발견하는 것에서부터 전개된다. 대사에서 언급되는 바와 같이, 인물들은 존재론적인 의문을 품는것을 시작으로, 자신의모습과 의식을 유지하는 동시에 타인이 되어 결핍된 욕망을 충족하려는 모순을 보여준다. 「존 말코비치 되기」 크레이그 슈워츠 (존 쿠삭) 스파이크 존즈 감독 1999

“직업이 다가 아니다. 돈도 다가 아냐. 무슨 차를 타는지, 지갑이 얼마나 두둑한지, 그딴 건 상관없어. 너는 노래하고 춤추는 세상의 쓰레기다.” 인간을 소비의 부산물로 전락시킨 현대 문명의 물신주의에 대한 조롱에서부터 마초적인 장치를 통한 극단적 대체자의 등장까지, 영화는 현대 사회의 허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탈출 심리와 저항 의식을 드러낸다. 「파이트 클럽」 타일러 더든 (브래드 피트) 데이비드 핀처 감독 1999

“현실이 뭐지? 현실을 어떻게 정의 내리나? 만일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고, 보는 그런 것들을 현실이라고 하는 거라면, 현실은 그저 뇌에서 해석해 받아들인 전기 신호에 불과해.” 매트릭스 안에서의 경험은 허상이며 그곳에서 벗어남으로써 진실에 이를 수 있다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영화는 감각과 실재 사이의 괴리를 다룬다. 「매트릭스」 모피어스 (로런스 피시번) 라나 워쇼스키, 릴리 워쇼스키 감독 1999

“내 마음 바깥에 있는 세상을 믿어야 한다. 비록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내 행동이 여전히 의미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눈을 감았을 때 세상이 아직 그 곳에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나는 세상이 아직 그 곳에 있다고 믿는가? 세상이 그 곳에 있는가?… 그래.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떠올리기 위해 거울을 봐야 한다. 나도 다를 것이 없다.” 영화는 사고로 인해 10분마다 기억을 잃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특수한 상황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이로 인해 그는 사고의 시점을 경계로 그 이전과 이후의 존재가 분리되고, 메모, 사진, 타투와 같은 기록의 파편을 매개로 두 존재는 불완전하게나마 공존한다. 「메멘토」 레오나르도 셸비 (가이 피어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00

“무대 뒤의 트럼본. 소리가 나지 않는 트럼본. 저는 소리가 나지 않는 트럼본이 정말 좋아요. 다음은 소리가 나지 않는 트럼펫. 모두 녹음된 거죠. 밴드는 없습니다! 전부 다 테이프죠. 오케스트라도 없습니다. 이건… 환상이에요.” 극 후반부, 주인공 베티와 리타는 「실렌시오 극장」을 방문한다. 실렌시오(silentio)는 라틴어로 침묵을 뜻한다. 무대에서 연주자가 트럼본을 연주하다가 손을 떼지만, 트럼본 연주는 계속된다. 공연 도중 가수가 쓰러지지만, 노래는 계속된다. 대사에서 극장의 마술사는 공연이 모두 녹음된 테이프로 진행된 것임을 밝힌다. 이상적인 인물이었던 베티는 정반대의 상황에 처한 ‘다이앤’으로 돌아온다. 이를 통해 베티는 다이앤이 극 중반부까지의 사건이 모두 그녀의 환상이었음을 말하고자 하는 듯 한다. 그러나 감독은 환상속 사건이 현실에 영향을 주거나 미래의 사건이 과거에 영향을 주는 등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무는, 모순되는 지점을 심어두어 환상과 현실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할 수 없게 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 마술사 (리처드 그린) 데이비드 린치 감독 2001

“유령이란 무엇일까? 끊임없이 반복되도록 운명지어진 비극? 어쩌면 고통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듯한 무언가. 시간 속에 정지된 감정. 빛바랜 사진처럼. 호박에 갇힌 벌레처럼.” 영화는 유령의 존재를 고아원의 닫힌 공간 속 아이들의 시점에서 보여주며 전쟁의 참상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유령의 서사는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인 배경과 그에 따른 인물간의 갈등 서사 사이의 경계를 위태롭게 오가고, 대사의 나레이션은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반복하며 유령의 존재와 상징을 되묻는다. 「악마의 등뼈」 카사레스 (페데리코 루피)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2001

“공주는 자신의 아버지의 왕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여러 세기들 동안 왕국을 정의와 상냥함으로 통치하였습니다. 그녀는 국민들로부터 사랑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지구에다 남긴 그녀의 작은 자국들은, 어디를 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에게만 보였습니다.” 영화는 스페인 내전 배경의 서사와 오필리아 개인의 서사 경계지점에 속에서 동화적인 환상을 심어넣는다. 전쟁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동화를 꿈꿀 수 밖에 없었던 오필리아의 서사는 동화적인 결말로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판의 미로」 판 (더그 존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2006

“커다란 네트워크가 있어, 맞지? 가능성의 바다 말이야. 난 개를 좋아해. 전에는 토끼를 길렀고 항상 동물을 사랑했어. 동물의 본성. 그들의 생각. 난 개를 지켜봐왔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보려고. 정말 곤란한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지켜봤지. 2달러만 꿔줄 수 있어? 집주인이 지독해서 말이야.” 영화는 전체적인 서사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해체되고 다층화된다. 대사는 이후 전개에서 드러나는 일부의 정보를 파편화하여 암시한다. 「인랜드 엠파이어」 프레디 하워드(해리 딘 스탠턴) 데이비드 린치 감독 2006

“네가 겪은 일도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녹록찮은 세상이잖아. 세월은 막을 수 없는거야. 너를 기다려 주지도 않을 거고. 그게 바로 허무다.” 영화는 혼돈으로 수렴되는 새로운 시대와, 그에 따라갈 수 없는 기성 세대 노인의 무력감을 대비적으로 묘사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엘리스 (배리 코빈) 조엘 코언, 에단 코언 감독 2007

“떡갈나무는 수백년을 자라요. 100년에 한 번씩만 자손을 생산한대요. 확실한 자손을 얻기 위해서요. 바보같은 소리지만 닉과 여기 왔을 때는 대단하게 들렸어요. 도토리가 지붕위로 떨어져요. 떨어지고 또 떨어지고. 죽고 또 죽어요. 이젠 이해되요. 에덴의 아름다웠던 모든 것들이 어쩌면 끔찍했을 거에요. 이제는 전에 듣지 못했던 걸 들어요. 죽어야하는 모든 것들의 울음을.” 도토리는 폭우처럼 쏟아져내려 썩어가고, 사슴은 사산하며, 어린 새는 둥지에서 미끄러져내려 개미와 매의 먹이가 된다. 영화는 에덴의 숲은 추락과 소멸의 공간으로 묘사하고, 자연은 그녀의 죄악에 대한 공포를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그녀는 두려움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끝내 자연에 동화하여 전이한다. 「안티크라이스트」 그녀 (샤를로트 갱스부르) 라스 폰 트리에 감독 2009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우주에서 우리 위치를 묻죠. 예술가의 책임은 절망하지 않고 존재의 공허함을 채워 줄 해답을 주는 거에요.” 주인공은 우연한 계기로 1920년대의 파리로 돌아가 당대의 예술가들을 만나게 된다. 대사는 주인공이 거트루드 스타인을 만나 자신이 쓴 소설을 보여주자 그녀가 내놓은 해답이다. 「미드나잇 인 파리」 거트루드 스타인 (캐시 베이츠) 우디 앨런 감독 2011

“난 다양한 일을 한다네. 작가이자 의사이고, 핵물리학자이자 이론 철학자라네. 하지만 그 이전에 한 인간이라네. 대책 없이 궁금한 게 많지, 자네처럼 말이야.” 갈 곳을 잃고 방황하는 주인공 프레디는, 랭커스터가 자신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마스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랭커스터 또한 불완전한 거울속 프레디의 또다른 자아임을 발견고, 자신의 결핍은 타인에 의해 채워질 수 없음을 깨닫는다. 「마스터」 랭카스터 도드 (필립 시모어 호프만)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2012

“자유롭고 싶어! 우리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자유로워 지고 싶어! 술도 진탕하고 싶어!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고 싶은게 바로 그거야!” 영화의 전개는 현재에서 미래로 향하지만, 개리는 체제에 순응한 동창들과 달리 과거 유년기의 추억으로 돌아가려 하며 이상과 자유를 이루려는 의지로 인해 두 경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과거 상황의 반복과 변주가 나타난다. 「지구가 끝장나는 날」 개리 킹 (사이먼 페그) 에드거 라이트 감독 2013

“르윈: 어디까지 얘기했지? 진: 나더러 속물이라길래 넌 찌질이라고 내가 면박 주고 있었지. 르윈: 그래, 맞아 너 좀 그래. 진: 좀 그런 건 네 얘기겠지. 르윈: 내 경험으로 볼 때 세상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 세상을 두 부류로 나누는 사람과… 진: 그리고 찌질이?” 음악을 계속하는 이상주의적인 주인공 르윈에 비해 현실에 타협하기로 전향한 인물 진은 서로 대립한다. 그러나 영화는 주인공을 평가하거나 연민하지 않으며, 관조하는 태도를 유지한다. 「인사이드 르윈」 르윈 데이비스 (오스카 아이작), 진 (케리 멀리건) 조엘 코언, 에단 코언 감독 2013

“네 망할 평을 읽어보자구. ‘미숙하다’ 낙인을 찍었네. ‘흐리멍텅하다’ 이것도 낙인이고. 여백… 여백에 긁적임? 무슨 헛소린지 모르겠구만. 다 똑같잖아. 멋대로 낙인을 찍어놨어. 자신이 너무 게으르다고 생각하지 않아? 게을러빠진… 이게 뭔지 알아? 이게 뭔지나 알기나 해? 모를거야, 왠지알아? 낙인을 찍지 않고는 이게 뭔지를 보지 못하니까. 머릿속의 잡음을 지식이라고 착각하고 있잖아.” 영화는 연극을 준비하는 리건 톰슨의 서사를 보여주는 극중극 구성으로, 단일한 롱테이크 시퀀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진다. 카메라는 리건과 주변 인물들의 행적을 끊임없이 쫒아다니며 공간의 거대한 흐름을 이루는데, 이는 리건이 겪는 현실의 공간과 그의 머릿속 환상의 공간 사이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며 관객을 혼동시킨다. 「버드맨」 리건 톰슨 (마이클 키튼)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 2014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돼야 합니다. 이곳에 왔다고 해서 우울해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동물이 돼도 짝은 찾을 수 있으니까요. 물론 동물이라고 멋대로 해서는 안되요. 공통점이 있는 동물을 선택해야 하죠. 늑대와 펭귄은 절대 함께 살지 못하죠. 낙타와 하마도 그렇고요.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말도 안 될 일인지” 솔로는 호텔에 45일간 머물며 짝을 찾아야 한다.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이 되어야 한다. 짝은 공통점이 필수 조건으로, 코피가 잦은 여자는 코피가 잦은 남자와 커플이 될 수 있고, 근시를 가진 여자는 근시를 가진 남자와 커플이 될 수 있다. 호텔에서 나와 숲속으로 도망치자, 그곳에서는 솔로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영화는 어느 곳에서도 한곳에 소속되기를 강요하는 이분법적 사회를 과장적인 묘사를 통해 풍자한다. 더 랍스터 호텔 지배인 (올리비아 콜맨)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2015

“이것저것 하는 사이에 인생이 지나가버려. 순간을 붙잡아 둘 순 없잖니. 가끔 앉아서 떠올리곤 해. 네가 자전거를 배우던 때랑 예전의 너를 버스 정류장에서 만났던 때를. 하지만 지나고 나서야 깨닫지. 막상 그 순간에는 깨달을 수가 없어.” 바쁜 딸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윈프레드는 토니 에드만이라는 캐릭터로 변장하고 그녀의 주변을 배회한다. 정반대의 가치관을 지닌 두 인물간의 마찰은 점차 심화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딸은 아버지의 방식을 어느정도 수용하고 화해를 이루는 듯 한다. 하지만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갈등은 봉합되지 않은 채 결말이 맺어진다. 「토니 에드만」 윈프레드 콘라디 (페터 지모니셰크) 마렌 아데 감독 2016

“난 이 날이 네 이야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었어. 추억은 이상한 거야. 내 생각과는 다르게 기억이 돼. 우린 시간의 순서에 너무 매여 있어.” 언어학자 루이스는 외계의 언어를 배우고 사고함으로써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순환을 기억해내는데, 이때 영화 초반부에서부터 교차되던 플래시백(이야기 전개 도중 과거의 장면을 보여주는 기법)은 플래시포워드(이야기 전개 도중 미래의 장면을 보여주는 기법)이었음이 드러난다. 대사는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반복되며 닫힌 고리 형태의 서사를 완성된다. 영화는 시간적 경계를 뛰어넘고 미래를 받아들이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포용에서 비롯된 선의는 서로를 가로막는 장벽을 허물고 소통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준다. 「컨택트」 루이스 뱅크스 (애이미 아담스) 드니 빌뇌브 감독 2016

“아빠 돌아가시고 들었는데, 제가 스파게티를 아빠랑 똑같이 먹는대요. 뭐라더라, 신기할 정도로 똑같다면서. ‘재 스파게티 먹는 것 좀 봐’ ‘쟤 아버지랑 똑같이 먹네’ ‘포크를 꽂고 계속 돌리다가’ ‘입에 쑤셔 넣네’. 저만 그런 식으로 먹는 줄 알았는데. 저랑 아빠만요. 알고 보니까 사람들이 다 그렇게 먹더라고요. 똑같은 방식으로. 그걸 알고서 속이 상했어요. 아주 많이. 돌아가셨단 얘길 들었을 때보다요.” 마틴은 아버지의 죽음보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연대감을 상실했다는 사실에 더 슬퍼한다. 이후 마틴은 복수의 대상을 스티븐에서 스티븐 가족의 연대로 옮긴다. 「킬링 디어」 마틴 (배리 키오건)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 2017

“영국인: 소프 씨의 경우가 전형적인 예인데, ‘한밤중에 찾아온 손님’ 이야기를 해줬죠. “밖에서 누가 문을 두드려.” “안 돼요, 엄마 문 열지 마세요, 이런 폭풍우에 누가 밖에 있겠어요?” 다 아는 얘기지만, 사람들은 어린애처럼 안달이 나서 들어요. 그 이야기를 자신과 연결 짓기 때문인 것 같아요.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죠. 이야기 속 인물이 우리 자신이면서도 우리가 아닐 때요. 특히 결말에서는요. ‘한밤중에 찾아온 손님’이 저자를 죽인 거죠… 전 아니에요. 전 영원히 살 겁니다. 그런데 말이죠… 클래런스가 작업을 마친 뒤에 그자들을 보면 흥미로워요. 길을 놓고 실랑이를 벌이죠. 프랑스인: 길? 영국인: 여기서 저기로. 저 반대편으로 가면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려고 애써요. 이해하려고 애쓰는 그들의 눈을 들여다보는 게 좋아요. 정말로, 정말로. 사냥꾼: 뭘 이해하려고 애써? 영국인: 전부 다요. 노부인: 그걸 이해한 사람이 있나요? 영국인: 그걸 제가 어찌 알아요? 전 그냥 바라볼 뿐이죠!” 대사는 2인조의 현상금 사냥꾼이 마차에 동승한 승객들과 대화를 나누는 부분으로, 갑작스런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는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인물의 입을 빌려, 영화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관객들을 감독이 역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형성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카우보이의 노래」 영국인 (조조 오닐), 사냥꾼 (셸시 로스), 노부인 (타인 데일리) 조엘 코언, 에단 코언 감독 2018

“신화는 그 당시 알고 있던 것입니다. 과학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입니다. 조만간 우리의 창조 이야기는 과학적 분석으로 해체될 것입니다. 어렵게 성취한 과학으로요. 그리고 모든 신들과 괴물들은 목적을 잃고 은유로 축소될 것입니다.” 대사는 신화와 과학의 대립에 관해 화두를 꺼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는 이성적인 현실 세계의 서사학자 알리테아가 비이성적인 이야기 세계의 정령 지니에게 나아가는 과정을 담아내고, 두 인물간의 이야기만으로 영화의 모든 서사가 구현됨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는 행위 그 자체가 과거에서 현재로 나아가게 하는 통로 공간으로 기능함을 은유한다. 「3000년의 기다림」 알리세아 비니 (틸다 스윈튼) 조지 밀러 감독 2022